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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부정공>학생공휘득명묘표(學生公諱得命墓表)
학생공휘득명묘표(學生公諱得命墓表) 공의 휘(諱) 득명(得命)이요 자(字)는 필수(必壽)인데 옥천인(玉川人)이시다. 고려(高麗) 때 검교대장군을 지낸 휘 장(璋)을 시조로 하여 三대를 내려와 휘 원길(元吉)은 호가 농은(農隱)으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보해지셨으며 시호는 충헌(忠獻)으로 무이사(武夷祠)에 배향되셨는데 공의 비조(鼻祖)이시다. 그후에 벼슬하는 자손이 이어져 휘 근(瑾)은 광양현감(光陽縣監)을 지내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追贈)되셨으며 휘 개보(介甫)는 호가 퇴암(退菴)이신데 천안군수(天安郡守)를 지내셨다. 저서(著書)에 경의집설(經義集説)과 사서소변(四書小辨)이란 책이 세상에 전하고 있다. 휘 계겸(季謙)은 사직(司直)이요 휘 학세(鶴世)는 군수요. 휘 상(祥)은 참봉이요 휘 세우(世瑀)는 수계(壽階)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제수하셨으며 휘 명(命)은 장사랑(將仕郎)이요, 휘 암(巖)은 병절교위(秉節校尉) 용양위 부사과, 훈련판관(訓鍊判官)이요, 휘 계생(繼生)은 수계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제수하셨으며 할아버지 휘 유월(有鉞)과 아버지 휘 신해(信海)는 모두 학덕(學德)이 있으셨고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 역시 부덕(婦德)이 있으셨다. 공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단정하고 총명(聰明)함이 뛰어나 四, 五세부터 책을 읽었는데 한 번 본 글은 모두 외웠다. 그뿐만 아니라 손님이 오면 응대하는 범절(凡節)이 예의법도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장성하여서는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예경(禮敬)이 한 고을의 모범이 되었다. 또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님의 뜻을 받들고 음식 봉양에 정성을 다 하셨다. 일처리가 투철하고 성격이 시원하셨으며 도리를 지키고 규범(規範)을 삼가 지키셨다. 몸가짐을 엄격하게 하고 생실을 단정하게 하니 보는 사람들이 저절로 옷깃을 가다듬고 공경하였다. 공은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고 도(道)를 즐거워하여 과거(科擧)에 응시할 뜻을 두지 않으셨다. 공은 년四월三일에 돌아가셨는데 옛말에 군자(君子)는 항상 시골에 살 뜻을 잊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공을 두고 한 말이라 하겠다. 묘소는 곡성 장성동(長城洞) 봉통곡(蜂桶谷) 갑좌(甲坐)이다. 배위 경주김씨(慶州金氏)의 묘는 부좌이다. 아들 하나를 두었으니 성순(成淳)이요 손자는 창옥(昌玉) 중옥(重玉) 자옥(自玉)인데 자옥은 효도와 학행(學行)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추증되었으며 증손 영흥(榮興)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우승지(承政院右承旨)에 추증되었으며 현손(玄孫) 상록(相祿)은 벼슬이 절충장군(折衝將軍) 용양위 호군,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 겸오위장(兼五衛將)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에 추증되었으며, 五세손 동혁(東赫)은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승진하였으며 六세손 상훈(尙勳)은 육군 중령(中領)이다. 근원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않고 뿌리가 단단한 나무가 가지가 무성한 법이니 그 자손이 영원히 번창할 것이다. 六세손 상훈이 비문을 간절하게 청하므로 글을 잘 짓지 못한다고 사양할 수가 없어 위와 같이 기록한다. 西紀一九八五年 四月 日 豊壤後人 趙南赫 짓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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